일상의 공간이 공포로 돌변하는 순간, 우리는 얼마나 안전한가. 영화 『뉴 노멀』은 가스 점검원, 옆집 이웃, 편의점이라는 극히 평범한 배경 위에 현대 사회의 균열을 날카롭게 새긴 작품입니다. 정범식 감독의 연출 아래,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인물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수렴되는 과정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사회적 성찰로 이어집니다.

하이퍼링크 시네마가 만들어낸 촘촘한 공포의 구조
『뉴 노멀』은 옴니버스처럼 보이지만, 정확히는 하이퍼링크 시네마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이퍼링크 시네마란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복수의 이야기가 특정 사건, 장소, 우연한 만남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서사 구조를 뜻합니다. 『뉴 노멀』은 이 형식을 통해 학원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를 돕던 학생,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리는 연쇄 살인범의 뉴스를 보던 현정, 옆집 여성을 몰래 촬영하는 변태 기진, 매일 밤 진상 손님과 싸우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연진이라는 전혀 다른 인물들을 하나의 세계 안으로 끌어당깁니다.
이 구조가 주는 공포는 단순한 살인 스릴러와는 결이 다릅니다. 각 에피소드가 독립적으로 전개될 때는 그저 '불쾌한 상황' 혹은 '위험한 징후'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연결될수록 우연처럼 보였던 모든 것이 필연의 그물망 위에 놓여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가스 점검을 가장한 검치원이 현정의 집에 들어오는 장면, 기진이 옆집 여성의 집에 무단침입한 후 침대 밑에 숨는 장면, 연진이 온라인 게시판의 좌표를 따라 굴다리 밑으로 내려가는 장면은 모두 개별적으로도 긴장감이 넘치지만, 인물들 간의 연결 고리가 드러나는 순간 공포의 밀도는 배가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영화가 만들어낸 공포의 진원지가 '낯선 악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진은 옆집 여성을 사랑한다고 스스로 믿으며 그녀의 칫솔로 이를 닦고 집을 뒤지는 행위를 낭만으로 포장합니다. 검치원은 혼자 사는 여성에게 죽은 피해자 이야기를 꺼내며 불쾌함을 즐기고, 연진은 온라인에서 무책임한 조언을 던지며 쾌락을 느낍니다. 이 인물들은 모두 우리 사회 어딘가에 실재할 법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이 영화를 단순한 장르물이 아닌 사회적 공포물로 만드는 핵심입니다.
일본 후지 TV의 토리하다 시리즈를 한국어로 영상화하는 기획에서 출발했지만, '토리하다(소름)'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계약 조건 때문에 새로운 챕터들을 더해 지금의 독자적인 뉴 노멀 세계관을 완성한 점도 흥미롭습니다.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니라 2022년 서울이라는 구체적인 시공간 위에서 새롭게 재조립된 것입니다.
현대인 고립이 낳은 공포 — 연결될수록 더 외로운 세계
『뉴 노멀』이 끝까지 붙들고 있는 주제는 '고립'입니다. 제목 자체가 역설입니다. '뉴 노멀(New Normal)'은 팬데믹 이후 새로운 일상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였지만, 영화 안에서 이 단어는 연결될수록 고립되는 초연결 사회의 모순을 가리킵니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소통하고, 온라인 게시판에서 낯선 이의 고민에 댓글을 달고, 배달과 방문 서비스로 언제든 누군가를 집 안으로 들일 수 있는 세상. 그러나 이 영화 속 인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하게 혼자입니다.
편의점 알바생 연진이 대표적입니다. 그녀는 매일 밤 진상들의 폭언과 갑질을 감내하며 살인 충동을 느끼고, 게임 속에서 '억대 연봉의 대기업 출신'이라는 가면을 쓴 채 기진 같은 인물에게 무책임한 조언을 던집니다. 현실에서는 쌓이는 인간 혐오를 온라인의 익명성 뒤에서 방출하는 것입니다. 그 조언이 실제 살인으로 이어지는 나비 효과는 초연결 사회의 가장 섬뜩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아무런 책임감 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행동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능성을 우리는 매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현정의 에피소드도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혼자 사는 여성으로서 연쇄 살인 뉴스를 보며 공포를 느끼는 현정은 가스 점검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집 안에 낯선 남성을 들여야 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체감합니다. 그녀가 미리 전기 충격기를 준비하고 화장실로 다가가는 장면은, 혼자 사는 여성이 일상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경계심의 무게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이 상황들이 과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취업 실패와 빈곤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구획된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영화 말미의 언급은, 이 모든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사회적 맥락을 제공합니다. 연진이 퇴근길에 안 좋은 생각을 하는 순간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영화는 이것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묵묵히 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통해 조용하게 질문을 던집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일상이 아닌가,라고.
정범식 감독과 배우들이 완성한 리얼리티의 힘
『뉴 노멀』의 완성도를 논할 때 연출과 연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정범식 감독은 2007년 데뷔작 『기담』에서 1942년 경성을 배경으로 낯선 공간에서 펼쳐지는 기이한 사랑을 그린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80년 뒤인 2022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뉴 노멀』은, 공간과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예측 불가능한 파멸이라는 주제 의식을 일관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K공포 영화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그답게, 이 작품은 개봉 직후 17개 해외 유수 영화제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텔레그라프 영화 기자이자 칸 국제영화제 별전 평론가인 팀 로비,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예술 감독인 미치 데이비스 등 저명한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수년이 지난 지금도 넷플릭스 한국영화 탑 10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역할도 결정적입니다. 7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최지우 배우는 베테랑 연기력으로 서늘한 존재감을 발산합니다. 아이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와 찰떡같이 맞아떨어지는 몰입감 있는 연기를 보여준 표지훈 배우도 인상적입니다. 특히 뉴페이스인 하다 배우는 매력적인 목소리와 함께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낸 표정 연기로 작품의 긴장감을 한층 높였습니다.
다만 사용자 비평이 정확히 짚었듯, 에피소드마다 톤이 달라 몰입이 자주 끊기는 것은 이 영화의 명백한 약점입니다. 기진 에피소드는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황당함으로 시작해 충격으로 마무리되고, 검침원 에피소드는 불쾌한 긴장감을 극한까지 밀어붙입니다. 하이퍼링크 시네마의 특성상 각 파트가 독립적인 완결성을 가져야 하지만, 그것이 동시에 전체의 호흡을 끊는 이중성으로 작용합니다. 일부 인물, 특히 기진은 충격을 위한 서사적 장치로 소비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구조적 한계가 영화의 주제 의식을 희석시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단절과 연결이 공존하는 형식 자체가 현대인의 삶을 닮아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뉴 노멀』은 가스 점검, 옆집, 편의점처럼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 공포로 돌변하는 순간들을 통해 현대 사회의 연결과 고립이라는 역설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톤의 불균형과 일부 인물의 소비적 활용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범식 감독 특유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실력이 작품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습니다. 사회적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이 영화는 장르적 쾌감을 넘어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Gpr7HIuuB9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