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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마크 오브라이언, 성 치료사, 장애인 영화)

by 구름빵태양 2026.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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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시인이자 저널리스트 마크 오브라이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은 처음 줄거리만 들으면 자극적인 소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랑받고 싶었던 한 남자의 삶을 가장 품위 있는 방식으로 담아낸 수작입니다.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마크 오브라이언, 성 치료사, 장애인 영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마크 오브라이언, 성 치료사, 장애인 영화)

 


마크 오브라이언, 불쌍하지 않은 한 인간의 초상

마크 오브라이언은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목 아래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전신마비 환자입니다. 호흡 보조기 없이는 단 세 시간도 버티기 어렵고, 일상의 대부분을 타인의 도움에 의지해야 합니다. 영화는 이런 그를 도우미(도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로 소개하지만, 동시에 농담을 잘 던지고, 질투하고, 짝사랑에 설레며, 고백했다가 상처받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으로 그려냅니다.

도우미 조안이 이따금 경멸의 눈빛을 보냈을 때 마크가 느꼈던 무력한 분노, 새로 온 도우미 아만다의 아름다운 외모에 금세 마음을 빼앗기는 장면, 아만다에게 고백했다가 만남이 끊어진 뒤 홀로 상처를 곱씹는 모습까지, 이 영화의 마크는 장애인이기 이전에 그냥 38살 남자입니다. 이 담담한 시선이 이 영화를 장애를 다룬 수많은 작품들과 구별 짓는 첫 번째 미덕입니다.

많은 장애인 소재 영화들이 주인공을 동정과 눈물의 대상으로 세우는 데 반해, 『세션』은 마크에게 삐뚤어진 감정도, 이기적인 욕망도, 평범한 남자의 허세도 허락합니다. 저널리스트로서 장애인 센터의 의뢰를 받아 성(性) 없는 장애인에 관한 글을 쓰려다 직접 성 치료를 경험하기로 결심하는 장면은 이 점을 압축해 보여 줍니다. 그는 재료가 없으면 취재원을 찾는 기자이고, 글을 쓰기 위해 몸을 던지는 작가입니다. 장애는 그의 직업적 열정을 막지 못합니다.

실화의 무게도 이 영화에 특별한 신뢰감을 부여합니다. 마크 오브라이언은 실존 인물이며, 영화는 그가 직접 쓴 에세이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 속 마크의 목소리에는 꾸며 낸 드라마가 아닌,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기록한 자의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감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작품입니다.


성 치료사 쉐릴과의 세션, 선을 지키는 관계의 아름다움과 한계

영화의 중심축은 성 치료사 쉐릴과의 여섯 번의 세션입니다. 쉐릴은 남편과 아들이 있으며, 처음부터 이 관계가 치료임을 분명히 합니다. 첫 만남에서 마크가 긴장한 나머지 돈부터 책상 위에 내밀자 쉐릴이 "나는 매춘부가 아닙니다. 미리 돈을 낼 필요 없어요"라고 바로잡는 장면은, 이 영화가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를 단번에 요약합니다.

세션이 거듭될수록 마크와 쉐릴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켜켜이 쌓입니다. 짧은 외출이 진짜 데이트처럼 느껴지고, 마크는 시를 써서 편지로 쉐릴에게 보냅니다. 쉐릴의 남편이 그 편지를 발견하고 화김에 버리는 장면, 그리고 쉐릴이 남편이 잠든 한밤중에 몰래 휴지통을 뒤져 그 편지를 찾아내는 장면에서 이 영화는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감정적 파동을 만들어냅니다. 영화는 이 감정을 사랑이라고 단정하지도, 불륜으로 단죄하지도 않습니다. 선을 끝까지 지키기 때문에 오히려 더 먹먹합니다.

쉐릴을 연기한 헬렌 헌트는 직업적 단단함과 흔들리는 마음 사이를 매우 섬세하게 오갑니다. 일을 할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쉐릴의 표정 변화는 이 영화의 감정적 밀도를 절반 이상 책임집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지나치게 마크의 시선에만 머물기 때문에, 쉐릴이 이 일을 하며 무엇을 감당하고 무엇을 잃었는지는 몇 장면의 표정으로만 암시될 뿐입니다. 성 치료사라는 직업이 개인의 삶에 어떤 경계선과 감정적 비용을 요구하는지, 쉐릴 자신에게 이 세션이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 줬다면 영화는 훨씬 입체적인 작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관계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전달되지만, 관계의 무게는 한쪽에서만 가늠됩니다.

신부 캐릭터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아쉽습니다. 가톨릭 신앙과 혼전 성관계라는 꽤 무거운 윤리적 갈등을 마크가 신부에게 고해성사로 꺼내놓지만, 신부는 처음부터 거의 마크 편에 서 있어서 그 갈등이 마크에게 실제로 얼마나 무거운 질문이었는지는 충분히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지점이 좀 더 팽팽하게 다뤄졌다면 영화의 철학적 깊이가 한층 커졌을 것입니다.


장애인 영화의 새로운 시선, 정전 장면이 남긴 질문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이 장애인을 다룬 여타 영화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장애를 감동 재료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억지 눈물도, 억지 희망도 없습니다. 대신 끝이 가까운 삶 속에서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했던 한 인간의 마음을 담담하게 보여 줍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순간은 정전 장면입니다. 마크가 쉐릴을 생각하던 어느 날 갑자기 정전이 일어나고, 호흡 보조기의 작동이 멈춥니다. 계속 지체하면 마크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는 간신히 병원에 도착하고, 농담을 던지며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그 표정 뒤에서 삶의 균형이 얼마나 얇은 실 위에 놓여 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 장면은 호흡 보조기 하나가 마크의 생과 사를 가른다는 사실을 관객이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순간이며, 그 이후 영화의 모든 일상 장면이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마크 오브라이언은 결국 세상을 떠납니다. 장례식장에서 그의 시가 울려 퍼지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영화가 끝난 자리에는 슬픔만 남지 않습니다. 마크는 마지막까지 사랑을 해 봤고, 설레어 봤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진심으로 남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움보다는 한 사람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듯한 묘한 충만감이 남습니다.

이 영화는 보는 이에게 조용하지만 묵직한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는 장애인의 욕망과 사랑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들을 보호하거나 동정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면서, 그들 역시 누군가를 원하고 누군가에게 원해지고 싶은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단순한 장애인 영화를 넘어서는 이유입니다.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은 주변 인물의 깊이와 후반부 호흡에서 일부 아쉬움이 있지만, 존 호크스와 헬렌 헌트의 연기, 그리고 끝까지 인물을 존중하는 연출이 그 빈자리를 충분히 채웁니다. 자극적인 소재를 가장 품위 있게 다룬 이 영화는, '사랑받는다는 것'의 의미를 오래 곱씹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조용한 밤, 혼자 차분히 보시길 권합니다.


[출처]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KT7rEg5JuJk